퇴사 후 창업 그리고 다시 취업
퇴사한 이유
글을 쓰기 9개월 전인 25년 4월, 전 직장을 퇴사했습니다. 전 회사를 다닐 때 세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했을 때 두가지 이상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맞는 회사로 옮기는 고민도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 처우: 경제적인 불만 없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정도인가?
- 사람: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인가?
- 일: 내가 동기부여가 되는 일인가?
주어진 역할에만 머무르기보다 팀 전체의 관점에서 필요한 일들을 고민하고 실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더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금융 비대칭성 해소를 목표로 한 사용자 중심 서비스를 지향했지만, 구조적으로 수익성을 크게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미 많은 회사들이 유사한 가치를 제공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회사의 우선순위 역시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가치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습니다. 영리 기업으로서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았고, 이 일이 제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제가 개발자가 된 이유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발자들처럼 특정 기술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팀을 리딩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저도 좋아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기술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고, 기술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안은 채 주어진 일만 수행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점점 커졌습니다. 제 태도와 감정이 주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염려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솔직한 고민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의 여정이 제가 함께하고 싶은 방향과는 다르다고 느꼈고, 그 판단 끝에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의 시작
이직을 통해 다음 회사를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에 앞서 제가 스스로 해결해 보고 싶었던 문제를 직접 풀어보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유지한 채 사이드 프로젝트로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그렇게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대하는 제 태도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가짐으로는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고, 실제로 출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도전을 선택한다면, 저에게는 배수진을 치는 방식이 더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회사를 다닐 때는 야근과 주말을 불사하며 일에 몰입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제 성향을 고려했을 때, 안정적인 직장과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끝까지 책임지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퇴사 후 개발자로 일하면서 항상 마주했던 문제인 '이미지 최적화'를 쉽게 해결하는 SaaS(Software as a Service)를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경계 없이, 0 to 1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분야별 스페셜리스트가 역할을 나누어 제품을 만들어갑니다. 인프라는 DevOps, 서버는 서버 엔지니어, 프론트엔드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가 담당합니다. 각자의 전문성이 모여 하나의 제품을 만들지만, 그만큼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가 다른 영역으로 전파될 때, 그 비용은 더욱 커집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술의 경계 없이 0에서 1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제품에 필요한 인프라를 직접 구성하고, 서버를 설계하고 개발하며, 프론트엔드까지 연결해 하나의 서비스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필요한 기술은 그때그때 학습하며, 실제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발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인프라 레벨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저장되고 처리되는지, 서버에서는 이를 어떤 형태로 가공해 제공하는지, 그리고 프론트엔드에서는 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자에게 전달하는지를 이해하면 각 영역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러 핸들링이나 성능 개선과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원인을 추적하고 해결할 수 있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이어졌습니다. 추후 팀으로 제품을 만들게 되어도 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하는 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 10%, 영업과 마케팅 90%
초기 몇 개월 동안은 제품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AI를 적극 활용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개발할 수 있었고,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많은 학습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품 개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관심과 시간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와 마케팅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제품의 가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MVP를 완성한 이후에는 콜드 메일 발송, 고객사 미팅, 직접 찾아가는 영업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개발자로만 커리어를 쌓아왔던 저에게 비즈니스와 마케팅은 매우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걷는 느낌이었고,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영업이 기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초기에 고수하던 개발 원칙과 설계 역시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수차례 수정하고 다시 작성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쉽지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영업이 제게 잘 맞는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며 버텨야 했습니다. 때로는 고객사로부터 무시하거나 조롱에 가까운 뉘앙스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다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B2B 영업에서는 제품 그 자체만큼이나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 그리고 신뢰 관계를 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익화 실패와 오픈소스로의 전환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수익화에는 실패했습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신뢰의 부재, 다른 하나는 기술적 해자의 부족이었습니다. 많은 개발자 도구들이 그렇듯, 오픈소스로 코드를 공개하고 긴 시간에 걸쳐 신뢰를 쌓은 뒤 이를 기반으로 수익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신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 MVP를 바탕으로 곧바로 영업을 시작했고, 이는 명확한 한계로 이어졌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창업 이후 AI 기술이 더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 단순한 기능 자체는 차별 요소가 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습니다. 고객사가 자체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수준의 더 깊은 기술적 해자가 필요했지만, 그 지점을 더 깊고 의미있게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판단 끝에, 전 세계에 무료로 배포하고 커뮤니티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제가 창업을 시작한 목적은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많은 돈을 버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해결하고 싶지만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이미지나 동영상과 같은 에셋 최적화와 비효율적인 에셋 업로드 프로세스 개선이라는 문제 자체를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픈소스로 전환해 더 많은 개발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마운 사람들
퇴사 후 창업을 선택하겠다는 제 결정을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믿고 지지해 준 사람은 제 여자친구였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루하루 감정의 기복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고객사와의 계약 미팅 전날에는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도, 당일 계약이 무산되면 급격히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곁에서 저를 믿어주었기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생겨도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는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러웠지만, 온전히 제 선택과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도움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제가 왜 이 도전을 시작했는지를 이해해 주신 분들, 기술적인 부족함을 솔직하게 짚어 주신 분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분들, 사무실 근처로 찾아와 술을 사주던 친구들, 그리고 제 선택과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조언을 건네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만남과 말들이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품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믿고, 어떠한 보상도 기대하지 않은 채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바쁜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한 분 한 분 직접 찾아뵙고 이 마음을 전할 생각입니다.
다시 취업, 헬스케어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회사를 선택할 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수익으로 이어지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안정적이고 이름이 잘 알려져 있으며 연봉과 복지가 좋은 회사보다는, 하는 일이 내가 공감하는 명확한 가치로 연결되는 환경이 제 가치관에 더 잘 맞았습니다.
창업을 경험하면서 특히 크게 신경 쓰게 된 것이 바로 건강이었습니다. ‘내가 멈추면 내 제품도 멈춘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고, 그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면, 운동, 식단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고, 그 결과 쉽게 지치지 않으며 더 오래, 그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지한 채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건강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분야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기업들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더 길어질 것이며,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더욱 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AI와 결합한 헬스케어는 큰 성장 가능성을 지닌 영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OpenAI가 건강을 ChatGPT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 중 하나로 언급하며 ChatGPT Health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2월부터 헬스케어 기업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제 경험들이 팀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종종 주변에서 퇴사하고 창업을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늘 같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더 일찍 할 거예요.”
그 경험은 저에게 꼭 필요했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교훈 하나를 배웠습니다. 바로 많이 시도하고, 빠르게 실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여러 시도를 통해 빠르게 실패하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조금씩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방식이 반드시 창업일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해보면 됩니다. 맛없을까 봐 해보지 않았던 요리를 만들어보거나, 유튜브에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아 올리지 않았던 첫 영상을 업로드해보거나, 회사에서 거절당할까 망설였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최근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영상을 업로드해보았습니다. 생각보다 하나의 영상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영상은 첫 번째보다 아주 조금 더 나아졌고, 작업에 드는 시간도 줄어들었습니다. 단지 계속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실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게 만들고, 현재에 머무르게 만듭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완벽함을 내려놓고, 그냥 한 번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실패를 조금 더 일찍 경험해보세요. 저는 그 과정에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